요즘 카페에 가면 커피보다 더 자주 눈에 띄는 메뉴가 있다. 크로플, 라떼가 아닌 밀크티, 프렌치토스트, 혹은 브런치 세트 같은 것들. 한참 커피 향에 빠져 살던 시절을 떠올리면, 이 변화가 꽤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의 소비자들은 커피 한 잔이 아닌, 카페라는 공간에서 ‘머무는 경험’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특히 Z세대와 MZ세대의 소비 패턴은 단순히 음료를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어떤 사진을 찍고,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분위기를 만끽하는지를 중심으로 짜여 있다. 이들은 커피 맛 자체보다, 커피가 ‘인스타그램에 어울릴만한 컵에 담겨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그렇게 커피는 이제 더 이상 주인공이 아니라, 경험의 일부로서 조용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렇다면 커피가 사라진 카페는 더 이상 ‘카페’가 아닐까? 커피 없는 카페, 말이 안 되는 조합 같지만 실제로 지금 도심 속에서 가장 잘 나가는 곳들은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 그 안에는 커피 한 잔 이상의 무언가가 담겨 있고, 그것이 지금 시대의 감성과 정확히 맞아떨어지고 있다.
커피 없는 메뉴가 더 잘 팔리는 이유
카페에서 커피가 잘 안 팔리는 시대라니,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처럼 들렸다. 하지만 실제로 여러 브랜드들의 월별 매출 데이터를 살펴보면 커피보다 훨씬 잘 나가는 품목들이 존재한다. 바로 디저트와 브런치 메뉴, 탄산 기반 음료, 비건 요리, 심지어는 맥주와 와인까지. 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그 안에는 아주 명확한 변화의 흐름이 있다.
우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공식은 더 이상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다. 요즘 카페 방문 목적은 명확히 달라지고 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앉아서 쉴 공간, 작업할 테이블, 감각적인 사진을 찍을 장소를 찾기 위해 카페를 찾는다. 이러한 공간의 성격이 강해질수록, 커피는 단지 옵션 중 하나로 밀려난다.
왜 커피 대신 다른 메뉴가 주목받게 됐을까? 우선, 시각적인 자극이 크다. 디저트와 음료는 커피보다 훨씬 더 많은 색을 담고 있고,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만드는 구성과 디테일이 가득하다. 이건 마케팅적으로 아주 강력한 무기다.
또한, 카페 메뉴의 다변화는 고객 충성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같은 카페라도 매번 다양한 음식을 선택할 수 있다면, 소비자는 ‘이곳은 늘 새로운 선택지가 있는 공간’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장 입장에서도 커피만 파는 것보다 메뉴 폭을 넓히는 게 더 많은 회전과 재방문을 부른다.
최근엔 건강, 식단, 식습관까지 고려한 카페 메뉴가 인기를 끌고 있다. 비건 디저트, 글루텐 프리 베이커리, 로우 푸드 같은 트렌디한 항목들이 커피 한 잔보다 더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판매율이 높다. 이런 메뉴들은 단지 먹는 음식을 넘어, 브랜드의 철학과 이미지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결국 카페는 이제 '카페인 공급소'가 아닌 '라이프스타일 경험 공간'이 되었다. 커피 없는 메뉴들이 더 잘 팔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지금 소비자들은 음료보다는 ‘분위기’, 그리고 ‘자기만의 선택’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공간을 마시는 시대, 커피는 배경이 된다
카페에서 마시는 건 정말 커피일까? 아침마다 들고 다니는 테이크아웃 컵에 담긴 라떼를 마시며 출근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 그 안에는 단순한 카페인이 아닌 ‘하루의 시작을 선언하는 의식’이 들어 있다. 그리고 그 행위는 더 이상 커피가 본질이 아닌, 공간적 분위기를 마시는 경험으로 변화하고 있다.
카페를 선택하는 기준을 생각해보자. 많은 사람들이 커피 맛보다는 분위기를 이야기한다. ‘여기 조명이 좋아요’, ‘사진 잘 나와요’, ‘음악이 조용해서 집중돼요’ 이런 말들이 커피 맛보다 먼저 나온다. 즉, 공간의 감도가 커피 맛을 압도한 것이다.
요즘 카페는 인테리어와 소품, 조도, 냄새, 음악, 심지어 공기 중의 소음 수준까지 브랜드의 정체성을 설계하는 요소로 활용된다. 그 모든 구성은 하나의 ‘경험 설계’이고, 그 안에서 커피는 주인공이 아니라 배경음악 같은 존재다. 없으면 어색하지만, 있어도 잘 인식되지 않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이런 구조에서는 커피가 맛있다는 평가보다 ‘여기서 책 읽으면 잘 읽혀요’, ‘여기서 친구랑 대화하면 시간 잘 가요’ 같은 문장이 더 중요한 마케팅 자산이 된다. 고객이 느끼는 만족은 커피의 품질보다 공간에서 흐르는 시간의 질감에 의해 좌우된다.
이런 소비 트렌드는 공간 브랜딩을 중요하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한 남성 브랜드 카페는 검은색, 금속 인테리어에 진한 에스프레소만 판매하며 전체적으로 묵직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반면 여성 타깃 브랜드는 파스텔톤 인테리어에 달콤한 음료 위주로 구성하고, 포토존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한다. 같은 커피여도 공간이 다르면 전혀 다른 브랜드 경험이 탄생한다.
이처럼 ‘커피를 마신다’는 행위는 ‘이 공간을 선택했다’는 상징이 된다. 커피는 그저 그 선택을 정당화하는 작은 장치일 뿐이고, 실제 소비자는 공간을 마시고 그 안에 머무는 경험을 음미하고 있다.
커피 없는 커피숍, 가능성을 묻다
‘커피 없는 커피숍’이라는 말은 처음 들으면 말장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콘셉트를 가진 공간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으며, 그들은 기존의 커피 중심 구조를 완전히 벗어나 전혀 다른 수익 모델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서울의 한 서점형 카페는 아예 커피 메뉴가 없다. 대신 각종 티와 논카페인 음료, 직접 만든 수제 디저트만을 판매한다. 이곳의 핵심은 음료가 아니라, 책과 공간이다. 사람들은 커피 없이도 이곳에 머물며 시간을 보내고, 그 시간을 소비한다.
또 다른 예로, 반려동물 동반 전용 카페 중 일부는 애견용 음료와 음식만 판매하고, 일반 커피는 제공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간 자체의 만족도가 높아 손님들은 음료보다 그 경험 자체에 지불할 의사가 높다. 커피는 빠졌지만, 오히려 브랜드 아이덴티티는 더 명확해진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카페들은 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핵심은 기대 전환에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카페’라고 하면 커피가 있을 거라 예상한다. 하지만 그 기대가 완전히 뒤집힐 때, 브랜드는 강한 인상을 남긴다. 마치 고기를 팔지 않는 채식 식당이 더 오래 기억에 남듯이, 커피가 없는 카페는 오히려 스토리텔링의 무기가 될 수 있다.
또한 커피 없는 커피숍은 커피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원두 가격, 수급 문제, 머신 유지 비용에서 자유롭다. 이건 단순히 콘셉트가 아닌, 비즈니스 효율성까지 고려한 전략이다. 그리고 그 전략은 ‘차별화’라는 측면에서 높은 경쟁력을 가진다.
더 흥미로운 점은, 이런 커피 없는 카페가 오히려 커피 브랜드와 협업하기 좋다는 점이다. 직접 커피를 내리지 않기 때문에, 원두 브랜드와의 파트너십 형태로 팝업 형태를 유연하게 도입할 수 있다. 커피를 직접 팔지는 않지만, 경험 속에 녹여서 자연스럽게 소개하는 방식이 더 설득력을 얻는다.
커피 없는 커피숍은 단순한 반전이 아니다. 그 안에는 기존 소비 관념을 해체하고 새로운 방식을 제안하는 실험이 들어 있다. 이 실험은 소비자들의 ‘고정관념을 깨는 경험’을 중심으로 한다. 이런 방식의 접근은 앞으로 더 다양해질 수 있으며, 카페의 본질이 커피가 아니라는 사실을 점점 더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무리
이제는 카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그저 커피를 파는 곳, 혹은 카페인을 섭취하는 장소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요즘 카페는 누군가에게는 사무실이고, 누군가에게는 작은 갤러리이며, 또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쉬어가는 안식처다.
그런 의미에서 ‘커피 없는 카페’라는 표현은 실제로는 커피가 아닌 것들에 더 집중하고 있는 공간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 이제는 커피가 없어도 카페라고 불릴 수 있고, 커피가 있어도 카페라고 불리지 못하는 곳도 생겨난다.
나 역시 이 글을 쓰면서 여러 번 카페에 앉아 있었고, 그 시간 동안 커피를 마신 날보다, 물이나 티를 마신 날이 더 많았다. 그런데도 난 ‘카페에 갔다’고 말한다. 그 말은 이제 커피와 상관없이 쓰이는 표현이 되어가고 있다.
카페라는 공간은 앞으로도 계속 진화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진화는 커피를 지워가는 과정이 아니라, 커피 너머에 있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방식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 변화의 흐름에 우리가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더 흥미로운 카페들이 우리 일상 속에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