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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속 미생물 – 발효 커피의 과학과 살아있는 맛의 비밀

by chirovlog 2025. 4. 16.

커피를 마시며 "이건 발효된 맛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하지만 우리가 고급 커피, 스페셜티 커피라고 부르는 것들의 대부분은 **발효 과정**을 거칩니다. 놀랍게도 이 과정을 주도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 즉 효모와 박테리아입니다. 이 글에서는 커피 생두가 어떻게 미생물과 함께 발효되며, 그 미세한 차이가 어떻게 향과 풍미를 결정짓는지를 과학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발효 커피란 무엇인가?

생두는 커피 체리(열매)에서 껍질과 과육을 제거한 후 건조되는데, 이 과정 중 일부에서는 **자연 발효(natural fermentation)**가 일어납니다. 이 발효는 단순히 보관 상태가 아니라, **의도된 미생물 작용**을 포함하며 이때 생성되는 다양한 화합물들이 커피의 향, 산미, 단맛에 큰 영향을 줍니다.

  • 자연 발효: 과육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건조 → 야생 효모 중심
  • 워시드 발효: 물속에서 과육 제거 후 발효 → 균 조절 용이
  • 애너에어빅(무산소): 산소를 차단해 특이한 향을 유도

커피 속 미생물의 역할

커피 발효에 관여하는 주요 미생물은 **사카로마이세스(Saccharomyces)** 계열의 효모, 그리고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 등의 유산균입니다. 이들은 과육의 당을 분해해 산과 에스터, 알코올 등을 생성하며, 그 결과 커피는 **복합적인 과일향과 부드러운 산미**를 가지게 됩니다.

  • 효모 → 단맛, 에스터 향, 플로럴한 풍미 생성
  • 유산균 → 젖산 향미, 부드러운 질감, 묵직함
  • 박테리아 → 발효 향신료 노트, 때론 ‘funky’한 느낌 유발

발효 기술의 진화 – 마이크로바이옴 조절

최근에는 발효를 단순 방치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설계하는 시대**가 왔습니다. 일부 커피 농장은 **특정 효모를 접종하거나, 발효 탱크를 제어**해 의도적으로 특정 향미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바로 ‘컨트롤드 발효’ 혹은 ‘프리시젼 퍼멘테이션’ 기술입니다.

  • 탄산침용(Carbonic Maceration): 와인에서 유래, 무산소 고압 발효
  • 효모 접종(NSE Fermentation): 커스텀 이스트로 풍미 설계
  • 온도/시간 조절: 미생물 생장 타이밍에 따라 향미 조율

왜 이걸 잘 모르고 마시게 될까?

커피는 발효식품임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소비자는 이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이는 커피가 ‘과일’이라는 사실조차 종종 잊혀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페셜티 커피의 세계에서는 발효가 **맛의 정체성** 그 자체입니다. 실제로 커피 테이스팅 노트에 나오는 **‘청포도향’, ‘와인 느낌’, ‘발사믹’** 등은 대부분 발효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즉, 우리는 매일 미생물이 만든 향을 마시며 감탄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마무리 – 보이지 않는 맛의 주인공

우리는 커피를 통해 단순한 카페인이 아니라, **미생물의 결과물**을 즐기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그들이 만들어낸 향, 산미, 단맛, 여운은 이제 전 세계 커피 품평 기준의 핵심이 되었죠. 다음에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그 뒤에 숨은 **살아있는 생명체들의 작업**을 떠올려보세요. 그건 단지 로스팅의 결과가 아닌, 미생물의 협연이 빚어낸 예술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