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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리카 커피, 잊힌 제3의 맛

by chirovlog 2025. 4. 25.

 

1. 전 세계 1%도 안 되는 생소한 커피, 리베리카란?

‘커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라비카와 로부스타만 떠올립니다. 실제로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99% 이상은 이 두 품종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는, 잊힌 커피 품종이 하나 더 존재하죠. 바로 리베리카(Liberica)입니다. 리베리카 커피는 아프리카 라이베리아에서 유래한 품종으로, 독특한 향미와 거대한 체형, 강한 생명력으로 인해 한때 커피 시장의 대안 품종으로 주목받았던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생산성과 수확의 어려움, 향미에 대한 호불호로 인해 주류 시장에서 점차 자취를 감췄죠.

리베리카 커피는 나무 자체가 굉장히 큽니다. 아라비카 나무가 보통 2~3m라면, 리베리카는 9m 이상 자라는 경우도 있습니다. 열매도 아라비카보다 크고 단단하며, 씨앗의 크기도 무척 큽니다. 이 때문에 가공과 수확 과정에서 추가 노동이 필요해 상업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로 이 독특한 구조가 리베리카만의 향미와 개성을 만들어주는 비결이기도 하죠.

향은 말 그대로 "야성적"입니다. 아라비카가 산뜻하고 꽃향기 나는 와인이라면, 리베리카는 묵직하고 우디하며 스모키 한 위스키 같은 느낌입니다. 특히 과일과 나무껍질, 허브, 훈연향이 뒤섞인 복합적인 향이 인상적이며, 커피보다는 고급 발효차나 와인의 느낌에 더 가깝다는 평도 자주 들립니다. 이런 독특한 향미 때문에 일부 바리스타들과 커피 애호가들은 “제3의 커피”라 불리며 컬렉션에 포함시키기도 합니다.

오늘날 리베리카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콩고 등 일부 열대 지역에서만 소량 재배되고 있습니다. 특히 필리핀의 바랑가이 바탄가스 지역은 리베리카가 가장 활발히 재배되는 곳 중 하나로, ‘카피 바라코(Kape Barako)’라는 이름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오랜 시간 사랑받아 왔습니다. ‘바라코’는 현지어로 ‘강한 남성’이라는 뜻인데, 이는 이 커피의 강한 향과 진한 바디감을 잘 표현한 별칭입니다.

이처럼 리베리카 커피는 흔하지 않은 품종일 뿐 아니라, 마시는 경험 자체가 완전히 다릅니다. 그저 '산뜻하고 부드러운 커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첫 모금에 당황할 수도 있지만, 한 모금 한 모금 음미하다 보면 이 커피가 가진 무게감과 깊이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2. 리베리카 커피의 맛과 향, 왜 이렇게 강렬한가?

리베리카 커피는 단순히 “강하다”는 말로 표현하기엔 복잡하고 독특한 향을 지녔습니다. 일반적인 아라비카 커피에서는 느낄 수 없는 훈연, 나무껍질, 정향, 가죽 같은 향이 기저를 이루고 있고, 과일향도 굉장히 이국적이며 잼이나 술에 절인 과일에 가까운 농밀한 풍미를 보여줍니다. 처음 마셨을 땐 약간 발효된 듯한 느낌과 함께 약간의 스모키 함이 퍼지는데, 이는 리베리카만의 생화학 구조 때문입니다.

리베리카의 씨앗은 매우 큽니다. 생두를 보면 타 품종보다 훨씬 길쭉하고 굵으며, 색도 진한 편입니다. 이런 물리적 특성은 로스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로스팅할 때 열이 내부까지 침투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에, 로스터는 일반 커피와는 다른 열 곡선을 적용해야 합니다. 너무 강하게 볶으면 푸석해지고, 너무 약하면 향이 살아나지 않기 때문이죠.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리베리카가 여전히 애호가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이유는, 커피 이상의 무언가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 커피가 ‘마시는 즐거움’에 초점을 둔다면, 리베리카는 ‘탐험하는 즐거움’을 제공합니다. 첫 모금은 강하고 무겁지만, 뒤이어 퍼지는 허브와 나무향은 깊고 조용한 숲속에 들어선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래서 종종 “커피가 아니라 경험이다”라는 표현까지 붙습니다.

또한 산미가 거의 없고 단맛도 은근히 있어, 커피 특유의 산뜻한 프로파일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입문 커피로 추천되기도 합니다. 단, 이 풍미는 누군가에게는 생소하고 이질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 호불호가 강하게 갈립니다. 하지만 호불호가 있다는 건 곧 개성이 뚜렷하다는 뜻이기도 하죠. 애매한 커피보다, 자기 색이 확실한 커피가 오히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법입니다.

리베리카는 특별한 블렌딩 재료로도 쓰입니다. 일반 커피에 리베리카를 10% 정도만 섞어도 전체 향의 무게감과 스모키함이 달라집니다. 고급 바리스타들은 이 점을 활용해 ‘리베리카 터치 블렌드’라는 이름으로 스페셜 메뉴를 내놓기도 하죠. 이처럼 리베리카는 단독으로도 훌륭하지만, 조합에서도 새로운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아주 희소한 존재입니다.

3. 왜 리베리카는 유명하지 않을까?

이쯤 되면 많은 사람이 궁금해합니다. 이렇게 독특하고 매력적인 커피가 왜 대중적이지 않을까?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단연코 생산성과 가공의 어려움입니다. 리베리카 나무는 너무 커서 관리가 어렵고, 열매는 크지만 단단해 수확이 힘듭니다. 기계 수확이 거의 불가능하고, 수작업 중심이기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듭니다.

또한, 로스팅 과정이 까다롭습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씨앗이 크고 단단하기 때문에 일반 로스팅 장비로는 열이 고르게 전달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리베리카만을 위한 전문 로스터가 필요하며, 이 또한 소규모 로스터리에게는 진입장벽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유통 또한 문제입니다. 워낙 소량 생산되기 때문에 일정한 품질로 대량 납품이 어려우며, 소비자와의 접점도 제한적입니다.

두 번째는 바로 호불호 강한 향미입니다. 아라비카가 대중적으로 선택받은 이유 중 하나는 산뜻하고 균형 잡힌 맛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리베리카는 첫 모금부터 강렬하며 발효된 느낌이 있어 일반 소비자에겐 "맛이 이상하다"라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대부분이 좋아할 수 있어야 하는데, 리베리카는 그 조건과 거리가 있죠.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비대중성’이 리베리카의 매력입니다. 쉽게 마시고 쉽게 잊히는 커피가 아닌, 도전적으로 접근해야만 제맛을 느낄 수 있는 커피. 마치 와인에서 내추럴 와인이 가진 존재감처럼, 리베리카는 커피 시장의 숨은 보석이자 소수만의 즐거움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점점 커피 시장이 다양해지고 고급화되면서, 이런 틈새 품종이 다시 조명을 받고 있다는 점도 희망적입니다.

현재 한국에서도 일부 스페셜티 커피숍이나 로스터리에서 리베리카를 직수입해 소량 제공하고 있으며, 해외 직구를 통해 생두를 구매해 직접 로스팅하는 커피 애호가들도 늘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 몇 년 안에 리베리카는 소수의 컬렉터 품종을 넘어, 새로운 커피 트렌드로 떠오를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마무리

사실 처음 리베리카 커피를 접했을 땐, 내가 알고 있던 커피의 기준이 완전히 무너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나무 향과 무게감, 입안에 오래 남는 스모키한 잔향이 낯설었지만, 이상하게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점점 ‘이런 커피도 있구나’라는 감탄이 생겼고, 지금은 오히려 일반 커피가 심심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리베리카는 한마디로 '모험가를 위한 커피'입니다. 대중적이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특별하고, 희소성이 있는 커피죠. 커피의 세계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존재이기도 하고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꼭 한 번 도전해 보세요. 이국적이고 강렬한 커피 한 잔이, 당신의 커피 인생에 새로운 페이지를 열어줄지도 모릅니다.